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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파와 종교를 떠나 진리를 찾는 이들에게


불교계의 대표라고 자처하는 조*종의 으뜸절인 해*사에 행자로 다녀온 도반스님이 어제 들려준 이야기가 가슴속을 저며온다. 이 나라의 형평성 없는 규정으로 인해 군법사를 가기위해선 반드시 조계종의 명암을 가지고 있어야 하기 때문에 동*대를 입학하고 학비를 충당하기위해 해*사로 출가를 해야만 했던 도반스님은 늙은 아이들의 철없는 모습들을 보며 얼마나 뜨거운 눈물을 삼키셨을까.


내용은 이렇다. [동안거를 하기 위해 찾아온 선원의 한 스님이 행자신부인 도반스님을 시켜 밀가루 한 포대를 가져오라고 했다. 행자로서 자기의 임무와 스님에 대한 예의를 갖추는 의미로 보살님께 부탁하여 최고급 밀가루를 정성껏 담아서 선원으로 올라갔다. 그곳에서는 선원에 들어와 있는 스님들이 족구를 하며 진중한 고찰로 생사를 해결하고자 하는 용맹정진의 노고로움을 달래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고 한다. 수행가운데 피로를 한가로운 시간을 갖으며 몸을 풀어주는 여유로운 센스야 잘못이 있겠냐만 심부름을 마치고 돌아서는 와중에 그(행자신분의 도반스님)의 눈에 비친 장면은 너털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었던 광경이었다. 그토록 정성껏 담아온 밀가루를 족구라인을 긋는데 쓰고 있었던 것이다.]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기를 스님들은 청렴하며 검소한 자세로 오롯이 공부에 전념하는 존재라 믿고 자신들이 해결하지 못하는 생로병사를 해결해 주어 그 해결책을 나누어주었으면 하는 공경스러운 마음으로 공양을 올린다. 뭐 꼭 점잖을 떨며 고상한 척 할 필요는 없겠지만 그렇다고 7곱살 난 애기들이나 하는 짓을 나이 지긋한 스님이 하는 것은 중생의 아픔을 치료하고자 출가한 승려들의 행위이라고는 볼 수가 없다.


 큰스님께서는 도를 깨우치기 위해 밀가루 반포와 불경만을 손에 집어 들고 산으로 올라가셨다. 그리고 깨우치기 전에는 밀가루가 떨어져 굶어죽을지라도 절대 내려오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낮과 밤 가리지 않고 불경의 비밀을 파헤치셨다. 이와 같은 죽음을 각오한 수행자의 마지막 열망으로 결국에 석가모니부처님의 참뜻이 전해지는 자리가 마련되었고 인류의 스승으로 설법 할 수 있게 되셨다. 


 나는 어제 물질이 허망한 이치를 듣고 허공이 꿈을 꾼다는 사실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오늘 먼 곳에서 찾아온 도반님들과의 만남에서 영원한 지금위에 찰나에 생멸하는 열반의 모습을 바라보는 설법을 듣고 나 없기에 삼천대천세계를 껴안을 수밖에 없는 이치를 가슴속 깊이 느낄 수 있어 또 한 번 석가세존께 감사드릴 수 있었다.

 그런데 불교계를 대표한다는 조*종 큰스님들의 제자들은 무엇을 배웠는가? 석가세존이 왜 위대하며 불교가 왜 최고의 가르침이라고 말하는가? 그들은 그 어떤 문언에서건 법회에서건 자세한 설명을 하지 않고 ‘신심을 내서 불경을 외우기만 하면 언젠가는 복이 있을 것이다’라는 맹목적인 기독교의 모순을 그대로 따라하고 있을 뿐이다.

 용맹정진이라는 이름으로 날밤을 새며 다리 꼬고 앉아있는 와중에 무엇을 깨우쳤기에 간절한 마음을 다해 공양한 신도들의 밀가루를 한낮 족구놀이 금 긋기에 쓰며 어떤 가르침을 펼치기에 다각실이라는 곳에 쌓아놓은 최고급 간식거리들에 둘려 쌓여 호의호식하는 모습을 그들의 후배들에게 떳떳하게 보이는지 모르겠다.




 이런 사례는 비단 불교계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어느 종교든 파벌과 이단이라는 이름으로 서로를 나누고 시시비비하고 ‘우리교회’, ‘우리절’, ‘우리성당’, ‘우리...’등등 금 긋고 분열시키는 선동만 한다. 불쌍한 이웃이라는 이름으로 봉사활동을 하는 곳이 없지 않지만 종교의 궁극적인 뜻을 헤아리고 배웠다면 절대 불쌍한 이웃이라는 이름으로 남을 폄하고 스스로에게는 배풀어주는 자기라는 인식을 심어 자타를 구별하게 하지는 않았을 것이며 물질적인 도움을 자랑스럽게 여기지는 않았을 것이다. 진정으로 세상의 실체를 궁극적으로 배웠다면 불쌍한 이들에게 ‘너희는 절대로 불쌍하거나 어려운 이웃이 아니다. 단지 가난한 꿈을 꾸고 있으며 아픈 꿈을 꾸고 있는 것이다. 꿈꾸는 능력이 진정한 너희들이며 이 꿈속에 여러 사연들은 영원할 수 없기에 이 삶을 놀이로....게임의 장으로 누리며 즐겨라’ 라고 말 해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물질적으로 어려운 이웃을 돕는다는 행위가 잘못이라고만을 할 수는 없다. 우선 그런 행동은 모두가 편안해지기를 바라는 선한 마음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며, 무엇이 올바르게 이웃에게 베푸는 일인지 그 어떤 종교의 스승도 가르쳐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스스로에게 이미 갖추어진 복덕을 찾아주어 편안함으로 이끌어 주는 것이 종교인의 참된 의무며 목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런 최우선적인 목표는 간데없고 종교가 하나의 사업으로 전락하여 오직 자기의 배를 불리는데 이용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는 게 사실이다. 진실이 무엇인지 왜 내가 태어나고 죽어야 하는지, 삶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설명할 수 없기에 종교인이라는 옷은 입었지만 그대로 중생, 신도, 재가자들과 똑같이 삶에 집착하고 죽음을 두려워한다. 이러한 모습을 보고도 기독교인은 신의 벌을 받을까 두려워 입을 다물고, 불교인도 마찬가지로 기복적인 신앙에 대한 기대감으로 진실을 외면하려고 한다. 다른 종교 모두 마찬가지다. 


 이런 이야기를 써봐야 누워서 침 뱉는 격이라고 생각한다. 어찌 되었든 그들도 먹물 옷을 입고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기 위해 머리를 깎고 있는 나와 같이 종교인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왜 이 글을 쓰는 것일까. 아니 써야만 하는가? 아무리 진실을 외쳐도 돌아오는 것은 썰렁한 외면뿐인데... 종교인을 가장한 도둑을 도둑이라고 일러줘도 오히려 그렇게 말하는 너는 뭐가 잘났느냐는 식으로 반감을 드러낸다는 것도 잘 알고 있는데... 항상 게으름과 구태의연함으로 나를 주장하며 악도의 길에서 허덕이며 아무에게도 가르침을 나누어주고 있지 않은 나인데... 왜! 왜!? 왜? 도대체 나는 이런 힘겨운 글을 쓰는 것일까?

 ‘아무리 이세상이 악해도 아직은.... 아직은 진실로 편안한 길을 찾고자하는 혈기왕성한 수행자가 존재할 것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에 그들이 외도의 스승을 만나 너무도 험난하고 머나먼 길을 돌아가는 것을 막고 간단하고 편안한 올바른 길을 가게끔 하고자 하는 바램에서 이글을 써야만 하는 것이다’라고 말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어찌 보면 나의 도반을 더 만들기 위한 나의 이기성일지도 모른지만 옳은 것은 옳은 것이고 아닌 것은 아니니 할 말은 당당하게 해야 하지 않겠나.


 종교와 파벌을 초월하여 모든 선입견을 배제시킨 다음 만나서 이야기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누구든 좋다.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이라면 누구든.... 이 세상에 스스로가 불행해지길 바라는 이는 아무도 없을테니 이 세상사람 모두와 만나는 날을 기다린다. 그때까지 수지독송하는 수행정진을 늦추지 말아 수승한 견해를 만들어야지.....